티스토리 툴바


언제나 블로그가 하고 싶었지만 그래서 시작한 네이버 블로그였지만 언제나 귀찮았다. 내 생각이랑 글을 올리고 모아두고 어디서나 보고 그러고 싶은데 일기장을 시작하면 그 일기장이 어떻게 생겼느냐도 일기 쓰는데에 대한 애정을 가지는 데 굉장히 중요하듯이 그냥 꾸미고 싶은데 그것도 귀찮았다. 아직 안 꾸며졌으니 나중에 써야지 하다가 계속 미뤄지고 그냥 생각만 해도 귀찮다. 일기쓰는 거 계속 이어가기가 힘든 것은 귀찮기 때문이다. 아, 어떻게 나는 하고 싶은 의지가 귀찮다는 약한 마음보다 약할까. 이제 안 귀찮아야지. 하면 안 귀찮아지면 좋겠지만 그래도 의지가 생기면 귀찮은 것은 그림자 처럼 따라온다. 하긴 내일 모레가 독일어 시험인데 이렇게 블로그를 시작한 것은, 새롭게 블로그를 시작 했다는 흥분을 못이긴 것도 있지만, 독일어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피하고 싶은 귀찮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근데 귀찮다고 무엇을 안하면 굉장히 무겁다 마음이.
귀찮음이라는 감정이 없었다면 인류의 역사는 분명히 달랐을 것이다.
아, 진짜. 귀찮음이 감정인가? 전에 엄마랑 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감정 아닌 것 같다. 예를 들면 ... 아 전에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지금 그거 쓰는 것도 귀찮다. 나중에. 그런데 이렇게 나중에 하면 나중에 쓰려나, 그 떄도 귀찮을 거다.
근데 자는 것은 귀찮은 적이 없는 것 같다.
귀찮다가 무슨 뜻이지? 전에 영어로 귀찮다를 어떻게 말하나 생각해 봤는데 feel lazy 가 가장 가까운 것 같다. 중국어로는 마판. ㅋㅋ 그러니까 번거롭다는 뜻이 있는건가? 뭐를 번거로우니까 누가 그거를 하라고 하면 게으른 마음이 들 것이다 이런 뜻이 되나? 흠 누구나 다 귀찮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건 분명한 것 같고 그러면 공통된 뜻이 있을 텐데, 뜻에는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귀찮은 데에 이유가 있나? 귀찮으면 핑계를 만들어 내게 된다. 아 나 오늘 수업 가기 귀찮아 오늘 약간 머리가 아픈것 같아서 아니면 아예 돌아서서, 오늘은 날씨도 좋고 지금까지 수업 잘 나갔으니까 오늘 하루는 빠져야지 사실 그게 또 삶의 체험의 하나이고 또 위인전을 읽어도 이런 거 나오는 것 같아 . 이런식?
이렇게 보면 귀찮은 것은 유혹의 한 형태인 것 같다. 형태가 아니라 유혹의 종류라고 해야하나? 유혹의 한 형태는 유혹이 어떤 하나의 특정한 모습으로 나타난 다는 뜻인데 유혹에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으니까 - 사실 다 유혹은 그 사람의 욕심을 건드리는 것 같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은데 나열하기는 귀찮다 - 어쨌든 유혹은 자기가 자기한테 하는 , 아니 말이 거꾸로 됬다, 어쩄든 게으름은 자기가 자기 자신한테 하는 유혹인 것 같다. 유혹은 감정이 아니니까 게으름도 감정이 아니고. ? 이게 맞는 논리인가? 어쨌든 게으름이 유혹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은 맞는 것 같다. 그 대신 게으름은 내부적인 것이니까 내가 게으름이라는 형태(? 종류?)로 남을 꾈 수는 없지만(유혹은 약간 이상한 어조가 있어서 꾀다로 쓰겠다) . 아 이건 쓸데없는 소리다. 왜 당연히 안되는 것을 당연히 어떤 발견인 것 처럼 쓰고 있지?
어쨌든 나는 블로그를 만들었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게 귀찮은 걸로 넘어갔다. 티스토리 블로그를 만들었다! 네이버 블로그 하다가 여기가 괜찮은 거 같아서 (그리고 멋있는 일기장 처럼 보여서) 가입하려고 하는데, 와 초대를 받아야 가입 할 수 있다. 신기한 것 같다. 이러면 가입 할 때도 뭔가 책임감이 생기고, 또 초대를 해주는 블로거의 예도 보고, 또 소속감이 있고, 뿌듯하고, 뭔가 있는 것 같고. 윈도우 대신 맥쓰는 그런 종류. 요즘은 그런 거가 (사실은 예전부터) 계속 물건 파는 것의 한 뿌리를 이루는 것 같다. 윈도우 대신 맥, 싸이 대신 블로그, 이런 한 10퍼센트에서 20,30퍼센트로 늘려나가는 소수정예의 트렌드 같은 거. 팹시는 이런 걸 잘 못살린 것 같다. 그냥 코카콜라에 덤비는 이등 콜라정도의 이미지. 그러나 윈도우 대신 맥을 쓰면 오히려 소속감이 있고 세련된? 느낌? 아 이런 거를 잘 표현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러나 이런 거를 물건 파는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또 이야기가 샜다. 티스토리 블로그를 만들었다. zzakbird님이 초대해 주셨다. 감사! 역시 이런 게 허니문 효과인가? 지금 막 글을 쓰고 있다. 아~~~ 쓰고 있다.
요즘 많이 단순해 진 느낌 이다. 무한도전을 좋아하다가 조금씩 챙겨보더니 "재밌는 것" "큰웃음" "빅재미" "자잘한 웃음" 이런게 너무 좋아졌다. 어느 때는 디씨 가서 눈팅하면서 실실실 웃고 있고. 이런 것을 계속 하다보니 재미에 빠져서 내가 해야 할 것이나, 나의 주체적인 생각을 하는 것에 대해 게을러 진 것 같다. (여기서 게으르다는 것은 귀찮은 것하고는 다르다. 비슷하지만, 사실 그렇게 비슷하지도 않다 흠. 색깔이 다른 건가? 게으른 것은 약간 습관의 느낌? 귀찮은 것은 내부에서 올라오는 마음의 소리?) 그래서 부지런히 읽고 쓰고의 중요성이 마구 생각 나는 것 같다. 계속 이런 생각 했었다. A Mind For God을 화장실 갈 때마다 요즘 읽고 있는데, 아 그렇다 나는 배우고 생각하고 읽고 말하고 쓰고 듣고 또 쓰고 해야 한다는 것을 계속 느끼고 있다. 느끼고 있다는 약간 부족한 말 같다. 음, 깨닫고 있다는 이상하고. 어쨌든 그러고 있다. 행동해야 하는데. 생각하는 기독교인이랑 기독교인은 사실 동의어가 되야 한다. 내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다면 그분의 영성, 지성, 창의성, 도덕성을 따라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배웠다. 그러니까 성경아 많이 읽고 얘기하고 쓰자.
근데 나는 지금 이 글을 나한테 쓰고 있는 건데, 내가 나한테 실제로 말할 때 (그러니까 생각할 떄?) 는 어떠한 말투로 말하는 지 궁금하다 . 사실 내가 나한테 말하나? 생각하는 게 언어의 형태로 나오지 않는다면 - 물론 일정 부분의 생각은 언어로 나오겠지? 그러니까 나는 영어로 생각한다 이런 말이 나오겠지? - 생각은 어떻게 하는 거지? 그럼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언어의 도움으로 어떻게 하는 거지? 수학? 정신과 뇌의 경계를 논하는 걸 배웠었는데, 물질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정신은 사실 뇌의 활동에 불과하고, 그럼 뇌의 활동은 뉴런들의 활동인데, 뉴런들이 어떻게 움직이는 게 생각이잖아, 근데 그러면 나는 내가 하는 생각들에 대해 주도권이 있나? 내 말은 내가 내 뉴런이 움직이게 컨트롤 하는 그런 어떤 장치가 있어야지 하는 데 그런 중앙 장치마저 내 정신이 아니라 물질이라면 그럼 결국 물질이 물질을 통제 하는 거고 그럼 나는 뭥미? 아 나는 물질론 을 믿지 않는다. 전에 페이퍼 낼 때는 I think I love you이 어색하지 않은 love 같은 정신적 동사와 I think I run같이 어색한 run 같은 물질적 동사를 나눠서 뭐 어쩌구 저쩌구 결국 감정은 생각과는 다르다라고 하는 걸로 ("Are Emotions Thoughts?") Mind 와 Brain을 나눴었는데, 이런 주제는 두고 두고 생각해 보겠다. 내가 말한 것도 아직 부족한 점들이 많으니까.
"Happy computer! Now that you have emotions, aren't you so happy?" - 미래의 과학자가 할 말?
참 이글은 주제가 없이 내 생각나는 데로 마구마구 썼다. 버지니아 울프가 이런 방식을 소설 쓰는 데 도입한 사람 들 중에 하나라고 들었는데( 맞나? ) 그 사람도 이렇게 썼을 텐데, 그 떄는 컴퓨터도 없고 펜으로 썼을 텐데 그러면 글씨를 되게 빨리 썼나보다.
사실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어보면 이거랑 약간 비슷한 느낌이 있는데 (산뜻한 주제, 약간 평범한 발전 그러다가 갑자기 나타나는 아름다운 장면들 우와) 슈베르트랑 다른 것은 거기에다가 구조를 넣어 놓았다는 것 같다. 그 사람은 기억을 잘 했던 것 같다 머리 속에 작곡을 끝내놨다는 것은 자기가 미리 머리속에 써 놓은 다음에 마치 컴퓨터 같이 머리 속에서 부분부분을 고치고 그렇게 했다는 것 같다. 고안. 연습. 노력. 해아지.
어떻게 연습해야 하느냐 - 모차르트는 음악이 언어였다. 내가 한국말 자연스럽게 말하는 것 처럼 그렇게 하게 연습해야지.
이제 그만 써야겠다. 독일어 공부 해야지. 독일어는 재밌다.
Posted by 낭비